단어 : 담배 문장 : 이 나라는 썩었어 젖은 어깨 위로 시린 한숨이 흰 색깔로 흘러나왔다. 묘비 위의 이름을 스치고 지나가는 엷은 연기를, 플래시는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한때는 저 이름이 그저 돌 위의 의미없는 흠집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플래시는 다시금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흑백의 세상 속에서 담뱃불...
사랑은 소년을 들뜨게 한다. 피터는 어느새 어른의 형상을 갖추며 자라난 제 몸이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눈먼 두근거림이 심장을 들뜨게 하고 까닭모를 열기가 뱃속에서 울렁거린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맥박이 온몸을 요란하게 울린다. 피터가 해리의 손을 잡았을 때, 피터는 알 수 있었다. 해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두...
그러니까, 그 사실을 맨 처음 알았을 때 플래시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멍해지지도 않았다. 그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군요, 하고 짧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알려줘야겠다며 나타샤가 말을 꺼냈을 때부터 그는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한 것처럼 보였다. 플래시의 가장 친한 친구인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고 고등학교 때부터 히어로 활동을...
피터 파커의 술버릇은 우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피터 파커답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한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 술버릇이었지만 정작 피터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자 토니는 무척이나 당황해버렸다. 술이 셀거라고도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고작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이러는 건 반칙이잖아. 거기다가 서럽게 울어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방...
사막의 밤은 넓었다. 까맣다기보다는 푸른 색에 가까운 하늘이 끝없이 모래언덕 위로 이어졌다. 낮 내내도록 쉴새없이 몰아쳐 파란 하늘을 노랗게 뒤덮던 모래바람도 모두 잠든 것만 같았다. 언덕 아래로 드문드문 서 있는 모래색 토담집들은 빈집인양 불빛조차 내지 않고 침묵했다. 샛노랗게 기울어진 초승달과 은빛의 은하수가 가로등 대신 사막을 비췄다. 그리고 그 빛 ...
*「In the Mood for Love(https://posty.pe/wrc2kc)」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피터 파커가 맷 머독을 만난 것은 길거리의 한가운데서였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었으므로 둘은 마주보고 선 채로 잠시 멍해있었다. 먼저 입을 뗀 것은 맷이었다. "오랜만이네, 피터. 여기서 만날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이렇게 만...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캐런 페이지가 죽은 것은 봄이었다. 밝은 햇빛이 세상을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웠다. 바람의 결은 섬세하고 가벼워 가득 향기를 품고 날아올랐다. 거리마다 물오른 새순의 푸릇한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참으로 좋은 날이다. 맷은 그렇게 생각했다. 캐런 페이지가 죽은 날은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 피터는 맷의 사무...
맷은 매일 아침 캐런의 심장소리를 확인하며 잠에서 깬다. 그녀의 심장이 고르게 뛰고 있는 것을 듣고나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캐런은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맷은 그녀의 볼에 키스하며 그녀를 안아든다. 그녀는 겨우 46kg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녀는 관절이 툭 불거진 팔로 맷의 목을 감싼다. 팔에는 반점처럼 주삿바늘 자국이 빼곡하다. 맷은 그녀에...
지상의 끝, 너와 나 홀리콕 님 마블_데드풀거미 안녕. 잘 있어. 언제부턴가 꿈은 똑같은 목소리로 끝이 났다.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남기는 작별인사. 그 인사는 조금은 서글픈 것 같기도 하면서 조금은 명랑한 것 같기도 한, 감정이 잘 가늠되지 않는 기묘한 어조였다. 피터 파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작별인사 앞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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