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하고 집에 왔더니 문 앞에서 남자 둘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진형의 문 앞이 아니라, 진형의 이웃집 문 앞이긴 했다. 하지만 문이 복도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오피스텔에서는 내 집 문 앞이 곧 남의 집 문 앞이요, 남의 집 문 앞이 곧 내 집 문 앞인 상황이라 진형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사온지 고작 2주밖에 안 됐는데, 이런 광...
피터는 정신없이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나무에 거미줄을 쏘고, 매달렸다가 몸을 튕기며 날아간다. 사람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달음에 도착한 맷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맷, 맷! 있어요? 있으면 대답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피터는 집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닭장 앞에 놓인 모이통이 수북하게 채워져 있는 ...
해리는 들뜬 얼굴로 맷의 반응을 기다렸다. 맷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 숲에 사는 사람은 당신뿐이죠. 영주의 식솔을 제외한 모든 이가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그런데 내가 그 괴인을 본 날은 하필이면 영주가 사냥을 하러 온 날이었단 말입니다. 영주의 식솔이라면 다 알고 있었을 텐데, 알면서도 그런 날 일부러 숲에 찾아...
맷은 피터가 데려온 사슴을 보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쫓아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찬장에서 고약을 꺼내오기까지 했다. 아기 사슴은 낯선 상황과 사람들에게 당황하고 놀랄 법도 한데, 탈진해버린 모양인지 얌전히 있었다. 사슴의 상처에서 화살을 뽑아낸 다음 고약을 붙이고 천으로 동여맸다. 사슴은 당연하게도 금방 다리를 펴지는 못했지만 물을 그릇에 담아...
지하 고문실에는 퀘퀘하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해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끌려온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산적이라고는 하나 잔뜩 겁에 질린 겉모습이 필부와 다를 바 없는 사내들이었다. 하긴, 농부가 곡괭이 대신 칼을 들면 그게 산적이지 다른 게 있겠는가. "그 놈을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잡혀오게 된 것인지 소상하게 말하...
날이 점점 길어지며 공기도 서서히 따뜻해졌다. 하루 종일 햇살이 내리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좋은 계절인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맷의 집에 머문 지도 어느덧 한 달째, 피터는 아직도 종종 헛간에서 잤다. 희한하게도 그러고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튼튼하긴 한가 보네, 하고 맷이 지나가듯 말했다. 피터는 웃으면서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불어오는 바람...
포기가 떠난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맷이 장작을 패고 있는 피터를 불렀다. 피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맷?" "조금 있으면 집에 돌아갈 거지?" "네. 곧 해도 지니까요." "음... 당분간은 우리집에서 지내는 게 어때?" 갑작스러운 제안에 피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맷의 얼굴에 조금 멋쩍은 듯한 기색이 지나갔지만 곧 그는 평온...
숲에는 많은 동물이 산다. 애초에 영주님의 사냥터니까 당연한 일이다. 숲에는 다람쥐와 토끼 같은 자그마한 동물에서부터 큼지막한 뿔을 자랑하는 사슴과 교활한 여우도 있고 피터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멧돼지도 있다고 한다. 맷은 피터에게 멧돼지를 보면 상대할 생각일랑 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일러두었다. 물론 그런다고 분노한 멧돼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
1163년. 선왕의 조카와 딸이 벌였던 내전도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새로운 왕의 치세에 모두가 익숙해져 있었을 무렵이었다. 해협 너머 광대한 땅을 다스리는 여공작을 아내로 맞았으나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여자를 건드린다는 왕과, 한때 왕의 총신이었으나 이제는 신실함이 지나쳐 고행을 자처한다는 대주교의 소문이 잉글랜드의 작은 시골...
"좋아해." "미안. 난 남자는 취향 아니라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물건을 토해내는 자판기처럼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은호는 잠시 현성을 올려다보았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럴 것 같았어. 그냥 군대 가기 전에 마음만 말해보고 싶었던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아... 너도 이번 학기 끝나고 군...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 직전에는 언제나 먼지냄새가 났다. 한껏 축축해진 습한 공기 속에서 진하게 맴도는 먼지 냄새는 비의 첫 발걸음이 땅을 디딜때까지도 지속되곤 했다. 물론 그 소리가 거세지기 시작하면 진한 비냄새가 습기와 뒤섞여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그 잠깐의 순간. 그 순간동안 맷은 예민한 후각에 와닿는 먼지 냄새에, 마치 사막에라도 와있는 듯한 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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